# 17. 카르페 디엠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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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퀸투스 호라티우스의 시이다.
“알려고 묻지 말게, 안다는 건 불경한 일
신들이 나에게나 그대에게나 무슨 운명을 주었는지
레우코노에여, 점을 치려고도 하지 말게
더 나은 일은, 미래가 어떠하든, 주어진 대로 겪어내는 것이라네
유피테르 신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게, 더 많은 겨울이든,
마지막 겨울이든,
지금 이 순간에도 티레니아 해의 파도는 맞은 편의 바위를 깎고 있네
현명하게나, 포도주는 그만 익혀 따르고,
짧은 인생, 먼 미래로의 기대는 줄이게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인생의 시간은 우릴
시기하며 흐른다네
제 때에 거두어 들이게 (carpe diem),
미래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해 두고”
이 시는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진 시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는 현명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미래를 위해 준비한 포도주는 그만 익혀 지금 따르고, 제 때에 거두어 들이게(carpe diem)’라고 말한다. 우리의 내일은 알 수 없으니, ‘현재에 살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포도주도 잘 익었을 때, 시기적절하게 따서 마셔야 한다. 아끼면 썩거나 신선도가 떨어져 맛이 덜해진다는 비유일 것이다. 이 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비유가 된다. 우리는 보통 현재에 살지 못하고 미래에 살기 때문이다.
이 시에 의하면 인간의 운명은 하늘만이 알 뿐, 알려고 하는 것도 불경한 일이니 신이 우리의 운명을 올겨울까지로 정했건 더 많은 겨울들을 예비하였건 우리는 현재에 살뿐, 당장 내일도 장담 못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현재, 우리의 오늘을 오롯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절제의 덕을 버팀목으로 삼아 의연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며 하루살이 같은 정열로 하루하루를 즐겨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나의 시이다.
어느 비정규직의 고백
오늘 하루를 가슴 떨리게 열심히 살아
기쁜 마음에 나에게 주는 술 한잔 신나게 쏟아부어주어도 좋으련만
난 하루살이가 아니기에 내일이 또 불안하여
오늘의 보람이 내일에의 막연한 슬픔 아닌 슬픔일지 모를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따뜻한 위로조차 되어주질 못하고
새하얀 별빛이 소주잔 위에서 떨고 있다
정규직보다 하루살이가 더 부러운 오늘
나는 하루살이보다 더 정열적인 오늘을 살았다
반짝이는 별빛을 몇 잔 마시고 아직 가지 않은 오늘의 기쁨을 노래하며
탭댄스의 리듬으로 온 지구를 발바닥으로 두드리고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멋지게 휘날리며
거칠게 돌진해오는 내일을 향해 굵고 힘찬 휘파람마저 날려본다
세네카도 역시 같은 생각이다.
“세상에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요? 그들은 더 잘 살려고 정신없이 분주하지요. 그들은 인생에 대비하기 위해 인생을 보내고 있지요. 그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을 뒤로 미루는 것이지요. 뒤로 미루는 것은 다가오는 족족 하루하루를 앗아가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약속하며 현재를 낚아채가지요. 기대야말로 내일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놓쳐버리게 하니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지요. 그대는 운명의 여신 수중에 있는 것을 탐내다가 그대의 수중에 있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지요? 미래는 모두 불확실한 법이오. 현재를 살도록 하시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저, 천병희 역, 《인생이 왜 짧은가》, 숲, 2005.>
오쇼 라즈니쉬는 말한다.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단지 현재에 살아라. 그러면 모든 과거도 모든 미래도 당신 것이 될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어스름해질 무렵 죽음이 찾아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기회는 늘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그리고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이상,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나 말끔히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마치 노랗게 변한 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지듯이, 당신이 열심히 행동하는 동안 불필요한 것은 저절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더욱 가벼워지고 목표한 높은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박재현 옮김, 《니체의 말》, 삼호미디어, 2013.>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과일을 비싼 값에 산 사람들은 막상 그 계절이 오면 후회하기 마련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저, 전양범 역, 《그리스철학자열전》, 동서문화사, 2008.>
다음은 나의 시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옛날 국민학교 교과서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아는가
모든 시간을 바쳐 일하고
겨울을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이라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한여름을 뜨겁게 노래하던
베짱이는 겨울을 나기 위해
개미에게 식량을 구걸한다지만
이 이야기는 다시 쓰여져야만 한다
베짱이가 노래하기 좋은 계절은
겨울보다는 여름이지 않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계절을
즐기고 노래하며
추운 겨울이 오면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자연이 주는 소박한 먹이로
절제된 기쁨을 노래해야 한다
구걸이 두려운 죽은 베짱이의 사회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즐겨야 한다
하 루 살 이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있어
우리네 삶은 냉정하기만 한데
너의 오늘은 아무런 망설임이 없어서
저 뜨거운 불 속으로 산화하는구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순간의 소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너의 뜨거운 정열을 닮았던 나의 젊은 날도 있었으나
오늘은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은 또 그 내일을 걱정할 뿐
나에게 오히려 오늘은 없다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삶을 살았던 영웅들도
너의 정열을 본받아 아직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
너는 하루살이가 아니었음을
태양은 또 기억할 것이다
하루살이의 사랑
하루만 살려는 의지로 먹을 입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네
짧은 시간이지만 널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며 했던 말
영원히 널 사랑해 이 맹세는 결코 거짓이 될 수는 없지
하루살이에게 거짓 맹세는 없다네
세상 만물을 변화와 거짓으로 물들여온 시간 앞에서
자유를 택한 나는 하루살이
나의 이성에 불순물은 없다네 오늘의 사랑에만 충실하고
내일의 사랑은 없어 안됐지만
하여 내게 위선의 가면을 씌울 필요도 없다네
이 순간 진정 그대를 사랑하였으므로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노라는 나의 맹세는
사실로 기록되어지리라 믿네
아이와 사과
아이는 훔친 사과 하나를
남모르게 감추었다
사과의 향과 고운 빛깔에 취한 아이는
바로 먹지 못하고
내일이나 그 언제쯤 그 맛을 맛보리라 생각했었다
어느 날 잊었던 사과를 떠올린 아이는
서랍 모퉁이에서 썪은 사과 하나를 꺼낸다
그 향기롭고 빛나던 사과는 하얀 곰팡이가 덮여
쭈그러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실망한 아이는 그날 먹었으면 좋았을
그날의 사과 맛을 그려본다
하지만 까닭 없이 불안한 아이
아이는 달콤하고 빛 고운 사과만을 골라
열심히 개미처럼
오늘도 창고만을 채운다
썩어버린 현재를 남몰래 감추고
언젠가 다시 만나길 기대하면서
우리는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서 살아간다. 밝고 건강해야 할 청소년들까지도 말이다.
미국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일이 있다. “평생에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변 중 가장 많은 수가 ‘그때 하지 않아도 되었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것’이라고 한다.
걱정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다음은 북유럽 신화에 관한 책인 《에다》에 나오는 말이다.
“현명치 않은 자는 밤새도록 깨어있어 온갖 걱정을 다하는구나. 아침이 오면 피곤할 것이나 걱정거리는 그대로구나.”
<카를 짐록 완역, 임한순·최윤영·김길웅 공역, 《에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다음은 나의 시이다.
일용할 양식
달콤한 먹이를 먹으려면 쉼 없이 벌어야 한단다
분주한 꿀벌처럼 말이다
길가에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도 달콤한 걸요
처음 가보는 길에 산딸기는 언제 또 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만큼 많이 넣어야 한다
시든 딸기는 먹지 않을 거예요
풀숲 사이사이 빨갛게 익어가는 통통한 보석만을 입에 넣을 거예요
이 길의 끝이 어디든
드문드문 풀잎 사이에 뿌려진
햇살 머금은 반갑고 싱싱한 딸기가
수줍게 웃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내 눈길이 많이 분주하지만 않다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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