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희생에 대하여

 희생의 가치는 한 알의 도토리가 땅에 묻혀 키워낸 거대한 떡갈나무와 같은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육체는 죽을 수 있으나 정신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인을 위해, 사랑을 위해, 인류를 위해, 나의 고통을 바쳐 세상을 구하는 것,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다. 대신하는 것이 희생이다.


다음은 요한복음(12:23-25)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장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기름은 촛불이 되어 타 없어져 버리지만, 불은 옮겨 붙여 주면 다할 줄 모르게 된다.”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장자》, 연암서가, 2010.>     


여기서 기름은 희생 없는 개개인의 삶을 말하고, 불을 옮겨 주는 행위가 희생인 것이다. 희생이란 꺼지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며, 점점 세상에 퍼져 세상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정신인 것이다.

희생을 성경식으로 정의하자면, 믿음을 통해 뿌려진 한 알의 밀 알 그 죽음으로 얻어진 영원한 삶일 것이다.

어떻게 확고한 믿음을 얻어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을 땅에 묻을 수 있는가.

다음의 글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식이 귀여운 자는 그 자식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자는 그 몸을 사랑하며 공적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그 일을 사랑한다. 사랑이 깊은 자모는 어린 자식이 행복해지도록 힘쓰고 행복해지도록 힘쓰면 화를 물리치는 일을 하게 되고 화를 물리치는 일을 하게 되면 사려가 깊어지고 사려가 깊어지면 사리를 알게 되고 사리를 알게 되면 반드시 성공을 거두고 반드시 성공을 거두면 일을 실행할 때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용기라고 한다. 성인이 모든 일에 대처하는 것도 모두 자모가 어린 자식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찾아낸다. 반드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찾아내면 (사리에) 밝아지고 그 일에 종사할 때 역시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용기라고 한다. 망설이지 않는 것은 자애로부터 생긴다. 그러므로 노자에 말하기를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감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비 저, 이운구 역, 《한비자 1-2》, 한길사, 2002.>     


희생은 확고한 자기 신념에서 나온다. 사랑은 신념을 낳고, 확고한 신념은 두려움 없는 용기를 낳고, 그 용기가 망설임없이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를 희생이라 하는 것이다.

희생은 결국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위에서 ‘반드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도’라는 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희생인 것이다. 그래서 희생의 순간에는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예수가 망설임없이 십자가를 졌고, 소크라테스는 망설임없이 사약을 들이켰으며, 체게바라는 망설임없이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이 사랑을 낳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고,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했다. 그들의 죽음은 세상 곳곳에 많은 열매를 맺었고,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살아 있으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다음은 이육사의 시 ‘광야’의 일부이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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