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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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을 주체로 보면, 가을이 되어 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죽음의 세계로 가는 것이 되지만, 나무 전체의 삶을 주체로 보면 이 나뭇잎의 떨어짐은 나무 전체의 삶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이를 깨달은 나뭇잎은 떨어지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떨어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도 성(性)을 주체로 인식하게 되면, 육체적인 죽음은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죽는 것을 곧 사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성(性)에 따라서 살면 죽음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다.”
<이기동 역해, 《대학.중용 강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1.>
윗 글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
삶과 죽음이란, 전체로 본다면 결국 하나 안에서 서로 변화를 주고 받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니,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장자가 말한 ‘천하를 천하에 숨길 때’ 죽음과 삶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음식물이 소화되어 변하면 똥이 되지만, 그 변화(죽음)에 의해 육체는 영양분을 얻어 살게 된다.
음식물이 선이고 똥이 악이 아니라,
삶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 아니라,
밝음이 선이고 어둠이 악이 아니라,
단지 변화일 뿐이다. 변화를 통해 사는 것이다.
먹은 식물이 똥으로 변할 때 육체가 살고, 육체가 떨어져 흙으로 변할 때 식물은 살아, 천하 안에서는 삶도 죽음도 없는 것이다. 단지 끊임없는 변화를 반복하면서 새로워지는 것이다. 물이 구름 되고,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강물로 흘러 만물을 씻어내며 다시 구름 되는 것이다. 늘 변화하며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천하의 죽음이라 할 것이다.
다음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다.
“바다 위 파도에는 시작과 끝, 즉 생과 사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파도가 비었다고 말했습니다. 파도는 물로 가득하지만, 그의 분리된 자아는 비어있습니다. 파도는 바람과 물의 도움을 얻어 생겨난 현상입니다. 만일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자신의 형상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파도가 그 자신을 물의 일부라 여기고 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면, 그는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파도는 밀려왔다 사라지지만, 물은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틱낫한 지음, 강옥구 옮김,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장경각, 2015.>
우리 인간 개개인을 주체로 본다면 파도처럼 사라지고 마는,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만, 파도가 그 자신을 물의 일부라 여기고 물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듯이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 여기고 자연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면 인간은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사라지지만 자연은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용’ 제1장과 같은 해석이다. 만일 죽음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해야할 이유가 없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이다.
“모든 실체는 우리와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 같음을 깨닫자. 죽음이란 사물의 본질이 해체되는 과정일 뿐이다. 한 물체가 또다른 물체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뭐가 그리 두려운가? 세상만물의 변화와 붕괴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과정이며, 자연법은 결코 악하지 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이동진 옮김, 《명상록》, 해누리, 2009.>
‘장자’역시 죽음에 대해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은 하늘의 법칙(운명)이다. 마치 밤과 낮이 일정하게 번갈아 바뀌는 자연현상과도 같다.”
다음은 죽음과 관련된 ‘장자’의 이야기들이다.
<다음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8j3213b.>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장자의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고 있었다. 이것을 들은 장자는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연벽(連璧)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弔喪客)이니 모든 것이 다 구비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하면서 그 의논을 즉시 중단하게 했다.
이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 매장을 소홀히 하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속의 벌레와 개미의 밥이 된다.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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