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시와 단상

 



얼굴에 이랑을 고랑을 파서 새끼들을 먹였다

매년 깊어지는 고랑을 보면서 새끼들도 더러 다짐들을 한다

하지만 가슴에 꽃도 명예도 달아 드리지 못했다

얼굴에 주름살만 가득 새겨 놓고도 마음에 돌을 던진다

수심을 짓누르며 천천히 떨어져 내린 돌이 바닥 깊은 곳에 또 하나의 짐을 더한다

예기치 않은 운명의 돌덩이를 맨살로 받아 안고도

언제나 담담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퍼지는 조용한 파문

깊은 호수 바닥은 돌과 나뭇가지들로 뒤엉켜 어지러웠지만

호수 면은 언제나 맑고 고요하기만 했다

미소로 파문이 일 때 호수 밑바닥이 더 잘 들여다보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시는 부모와 자식 간의 메울 수 없는 운명적 간극을 호수라는 이미지로 빌려 쓴 것이다. 부모에게 잘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을 미워할 수 있는 부모는 또 어디 있겠는가. 마음속 깊이 호수 밑바닥에는 부모만이 아는 고민이 어지러이 가라앉아 있을 것이고, 자식은 생각 없이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간혹 보이는 잔잔한 웃음에서 오히려 그 숨겨진 마음이 잘 드러날 때가 있어 자식은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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