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 - 시와 단상

 





아직은 정지화면 

플랫폼에 배우들 몇몇을 마네킹처럼 세워두고 철마는 초조하여 바짝 당겨진 고삐에 

콧김만이 뜨겁다 역장의 스탠바이 큐 싸인에 상영관이 트레일러 위에 얹혀 천천히 움직인다 

배우들이 서서히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지워져 가고 육중한 무게가 시계보다도 정확하게 

마디 마디 시간을 끊어내며 그 무슨 단조로운 무성영화처럼 기차는 간다 

지구 위엔 수많은 궤도가 존재하지만 상영관과 지구 사이에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정해진 

두 줄 레일이 상영관의 이름과 영화 제목을 정한다 

태양이 영사기인 한낮의 영화관은 암막이 필요 없다 영사기는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지만 

상영관은 일정한 궤도에 따라 운행하는 이유로 눈이 부실만큼 영사기가 관객석에 역광을 

비추는 경우도 있어 3D 영화관은 아니지만 검은색 선글라스가 필요할 때도 있다 막간의 

휴식을 위하여 지구의 얇은 눈꺼풀이 셔터를 내려 갑작스런 정전처럼 영사기를 가리는 경우도 

있는데 허스키한 폐의 비명이 철로에 갈리며 마디 마디 끊어질 때는 휴식을 취하되 영화의 

스토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눈은 뜨고 있어야만 한다

화면은 끝나지 않을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다가 중간 중간 지루한 사람들을 내려주고 새로운 

관객을 받는다 젊은 여자는 무성영화 따위 재미가 없어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았고 

눈물겨운 영화를 다시 보러 왔다는 할머니는 짧은 영화가 아쉬운 듯 보따리 하나 무릎에 놓고 

눈물을 보인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블록버스터보다는 흐르는 자연에 감정 하나 하나 박아 넣을 수 있는 

고전 영화가 좋아 나는 KTX 대신 통일호나 무궁화호를 탄다 젊은 날에는 야간 상영관도 찾아 

상영관 복도에서 맥주도 마시며 영화보다도 시끌벅적한 잡담으로 시끄러웠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던 시절 영화의 피날레가 정동진이라는 자막과 함께 끝나면 모든 관객들이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관람객이 점점 줄어가는 영화제에서 큰 상 한번 받아보지 못한 

이 예술 영화는 비둘기호처럼 블록버스터에 밀려 이제 곧 상영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느린 기차가 있고, 빠른 기차가 있다. 영화는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예술영화가 있고,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가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느리고, 오래되고, 아날로그적이고, 

고전적인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할 때도 버스나 승용차보다는 기차를 선호하고, 

기차도 KTX 보다는 통일호나 무궁화호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순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둘기호는 이미 사라졌고, 

통일호도 이제 사라져 가고 있다. 

서양의 현악기도 좋아하지만, 우리 국악기에는 알 수 없는 향수와 전율이 느껴진다. 

정말 가끔 볼 수 있는 거리의 풍물에서 그 어떤 희열과 감동보다도 더한 행복을 느낀다. 

논어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있을 적에 소악(韶樂)을 들으시고 3개월 간 고기맛을 잊으셨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게 거리의 풍물이 딱 그런 느낌이다.

 나는 사라져가는 우리 민속음악이 너무나 아깝다. 

안동 하회마을을 고등학교 시절에 동생과 둘이 버스를 타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거리가 멀어 도착하고 보니 캄캄한 밤이었는데, 밤 하늘에 별은 쏟아질 듯 눈부셨고, 

마을은 고요한 중에 먼 곳에서 구수하게 풍겨오는 건초타는 냄새나 아궁이에서 전해지는 

불의 온기와 불멍.

하루를 살더라도 온돌방과 한옥에서 자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도 가장 살고 싶은 집이 발길에 닳아 반짝반짝 빛나는 마루가 있는 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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