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엄마 - 시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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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엄마를 가지고 있다.
한 근엄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노인이
한 아파트 위층에 살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요양보호 시설 차로 그 노인은
아파트 일층에서부터 부축을 받아 아침마다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에야 다시 부축을 받아 돌아왔는데
어느 아침 엘리베이터를 눌러 놓고
무얼 바삐 찾아 들어온 나는 어느 청년이 아파트 계단에서
엄마를 찾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듣기에 한 청년이 앞집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인이었다. 목소리만은 젊은 청년이었다.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릴 적 자기 집인 줄 알고
계속 문고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일층으로 내려가던 그 노인을 내가 불러 세운 것이다.
그렇게 근엄하고 말없던 노인이 아이의 해맑은 얼굴로
미소 지으며 문고리를 흔들며 어릴 적 엄마를 찾고 있다.
아빠는 하늘에 풀어놓은 바람과 같아 잡을 수 없는 사람이고
엄마는 굴러 떨어지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골짜기와 같아서
누구나 엄마의 품속에 안긴다.
아이도 청년도 백발의 노인도 엄마를 찾는다.
각자가 모두 각자의 엄마를 기억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결국 대지라는 하나의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날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정해진 부모와 연을 맺고 살기 시작한다. 동양 철학으로 말하자면 태극 또는 무극(우주)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음과 양, 곧 하늘과 땅이 세상 만물을 낳아 기른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인간은 큰 뜻에서 보면 하늘과 땅이 낳아 키우는 것이다.
조선 중기 승려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시에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는다는 말이 있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으로는 베개를 삼고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로는 술통을 만들어
크게 취하여 거뜬히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나니
문득 긴 소맷자락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되는구나
출처 https://jj-maumdaro.tistory.com/1189
장자는 하늘과 땅을 관으로 삼고, 해와 달과 별을 관속에 부장품으로 넣었다.
장자(莊子)가 임종을 맞았을 때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더니 장자가 말했다.
吾以天地爲棺槨(오이천지위관곽) 以日月爲連璧(이일월위연벽) 星辰爲珠璣(성신위주기)
萬物爲齎送(만물위제송) 吾葬具豈不備邪(오장구기불비야) 何以加此(하이가차)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곽(棺槨)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삼고,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둥근 옥과 모난 옥으로 삼고, 만물을 저승길 가는 선물(부장품)로 삼을 것이다. 그러니 내 장례에 필요한 도구는 완비되지 않았는가. 무엇을 여기다 더 보탤 것이 있겠는가.
출처: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
부유한 귀족이었던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재산을 농노들에게 나누어주고 가난하게 살면서 사랑을 실천한 문학인이고, 철학자였다.
그는 위대한 소설들을 많이 썼지만 그의 작은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은 사랑에 관한 한 가장 위대한 소설이고, 위대한 철학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님이 천사에게 아버지는 며칠 전에 죽고, 아이 둘을 양옆에 끼고 누워 병들어 죽어가는 엄마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고 명령했을 때, 천사는 아이들이 불쌍해 차마 엄마의 영혼을 거두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천사에게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면서 날개를 꺾어 지상으로 벌거벗겨서 내려 보낸다. 천사의 생각에 아빠도 엄마도 없는 어린아이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웃 여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낳아 키우지만 사실은 하늘과 땅이 낳아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위대하고 큰 사랑에 관한 철학적 메시지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세계시민이라든지, 묵자가 세상에 남이란 없다고 한 것이라든지, 장자가 천하를 천하에 숨긴다고 한 것, 체게바라가 자신의 시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여는 열쇠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우주 안에서 우리 각자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만인을 사랑한다면 세상은 불안할 이유도 불행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하늘과 땅이 낳아 키우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장지구(天長地久)라고 말한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2세라는 희곡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 눈 가는 모든 곳에서 행복할 수 있다."
여기서 눈이라는 것은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물과 같은 존재이다. 눈은 시궁창에도 떨어지고, 궁전에도 떨어지고, 세상 깨끗하고 더러운 곳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그래서 흙수저 금수저는 없는 것이고, 부모는 원망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지 원망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우리가 진정 지구의 주인이라면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는 것이다. 불가에서 출가란 부모 자식을 매정하게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족을 품기 위해 또 다른 가족도 품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강들이 흘러 흘러 바다에 도달하면, 강이라는 이름은 버리고 바다와 하나가 되듯
진리를 알게 된 사람은 이름과 형태의 구속에서 풀려난다.”
이재숙 풀어씀,《우파니샤드, 귓속말로 전하는 지혜》, 풀빛, 2005.
다음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했던 말들이다.
“나는 쿠바인, 아르헨티나인, 볼리비아인, 페루인, 에콰도르인 등이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진정한 혁명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혁명이며, 어떠한 물질적 보상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체 게바라의 시이다.
개인 이기주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개인 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아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 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마음을 개조시키는 오직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체 게바라 저, 이산하 역, 《체 게바라 시집》, 노마드북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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